내가 대학교 1학년 때였던가?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던 중, 한 달에 약 100만원 이상의 고액을 벌 수 있는 일을 찾아냈다. 당시 대우전자 생산직 자리로, 컨베이어 시스템을 통해 냉장고를 만드는 일이었다. 내 스펙에 고액과외는 언감생심, 그렇다고 커피숍이니 PC방이니 알바해 봐야 한 달에 50만원도 벌기 힘들고, 대학등록금은 비싸니 이런 자리를 모른 척 하기는 힘들었다.
때문에 전단지에 붙은 전화번호와 약도를 소중히 들고 오라는 곳으로 찾아갔었다
. 그런데 정작 내가 간 곳은 대우전자가 아닌 다른 회사의 이름이었고, 공장 내부가 아닌 조그맣고 허름한 사무실이었다. 이상했다. “왜 나는 대우전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다른 이름의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을까?”그 회사는 면접이라는 명목으로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딱히 업무와 관련된 내용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들은 내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게 되며, 인천의 대우 공장으로 내일부터 당장 출근하라고 했다. 대우직원이 아닌데 대우로 출근하며 대우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상했다. 하지만 나에게 100만원은 큰 돈이었다. 그래서 의심하지 않았다.
생산직은 만만치 않았다. 일을 시작한 후 그야말로 고통의 나날이었다. 컨베이어 시스템은 인간에게 쉴 틈을, 천천히 일할 틈을 주지 않았다. 매일 야근과 특근이 이어졌고, 그렇게 일주일 내내 일해도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이 100만원이었다. 그것은 그렇게 큰 돈이 아니었다. 여름에 40도가 넘는 공장 안에서 질려갔고 질식해갔다. 그렇게 일하는데, 다들 100만원을 받는건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고작 100만원 손에 쥐고 딱 한 달 정도 일하자, 갑자기 내가 면접을 봤던 이름모를 기업의 관리자가 공장을 돌며 소속 직원들을 찾았고 나에게도 찾아왔다. ‘물량이 줄어들어 사람을 많이 쓸 수가 없다’며,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난 부당해고를 당했다.
나는 알바였다. 그래서 부당해고를 당해도 좋았다. 그런데 만약 내가 생계를 두고 일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그래도 좋았을까? 한 달 내내 뼛골 빠지게 일하고, 달랑 100만원 손에 쥐고 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을까? 부당해고를 당해도, 기뻐할 수 있었을까?
한 차에, 누군가는 왼쪽 문을, 누군가는 오른 쪽 문을 단다. 그런데 왼쪽 문을 다는 사람은 정규직, 오른쪽 문을 다는 사람은 비정규직이라 한다. 그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똑같은 일을 하고, 다른 월급을 받는다. 같은 공장에서 같이 밥 먹고, 같이 일하는데 각각 서로 다른 회사 직원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
<25일>에 등장하는 현대자동차 직원들은 비정규직이다. 그들은 버틸 수가 없었다.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받았고 고용불안에 몸을 떨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그 파업은 정당했다. 대법원이 그들을 현대자동차 직원이라 했는데 현대는 자신의 직원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 파업은 외로웠다. 보수언론의 공격? 사측의 탄압? 공권력의 유린? 그것은 외롭지 않았다. 무엇보다 외로운 것은 왼쪽 문을 다는 정규직들의 외면이다. ‘아름다운 연대’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파업을 설명할 때 나오는 단어지만, 이는 일부 정규직 대의원들의 헌신과 애정이다. 정작 이경훈 노조위원장과 집행부는 비정규직 노조를 공격하고 탄압하고 유린했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공격하는 광경, 그것이야 말로 절망이고 비극이다.
<25일>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울산공장을 점거한 투쟁의 기록이다. 저자인 박점규는 기록과 유려한 문체로 이 절망과 비극, 그리고 공장 안의 희망과 행복을 담담한 어조로 그려냈다. 그 25일 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마치 함께 겪은 것 마냥 느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훌륭한 기록이자, 논픽션 문학의 정수를 보는 듯 하다.
비정규직 비율이 늘어나고, 노동의 힘이 상실된 지금 이 시대, 이 책은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건, 노동운동에 관심없는 사람이건, 때문에 한 번은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특히 이경훈 현대차 노조위원장에게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이유는 뭘까?) 이 책은 현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이며, 희망이다.
<25일>, 현대차 노동자들은 자신의 지휘향상과 고용보장을 위해 싸웠지만 이들은 단지 자신만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다. 이들이 곧 비정규직이고, 이들이 곧 차별이다. 나는 소망한다. 적어도 비정규직 파업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격하게 공감하고 통크게 연대하기를, 그들만의 25일이 아닌, 우리의 미래를 바꿀, 미래세대를 위한, 그리고 지금 당장을 위한 모두의 25일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